빌게이츠는 잡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의 미치도록 뛰어난 영향력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편하게 점심 먹을 시간 혼자 따로 나와 용한 병원을 가기 위해 번거롭게 한 정거장을 전철로 가면서 이렇게 투덜거렸다. '이번 내 몸을 난도질한 감기의 미치도록 뛰어난 위력에 욕이 나온다.'

치료를 받고 밖에 나왔다.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한다. 뼈해장국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은 최근 먹었더니 맛이 별로였다. 회사 근처 명동쪽으로 이동했다. 순대국 집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가득차서 기다려야 했다. 3분 기다렸다가 못참고 명동거리 안쪽으로 걸어갔다. 왕돈가스가 생각났다. 기름진거 먹지 말자고 하는데 내 걸음걸이는 저절로 왕돈가스 집으로 향한다. 왕돈가스를 푸짐하게 먹고 회사로 돌아왔다. 

퇴근길에 멍하니 있는데 점심때 식당을 찾아가는 발자취가 생각났다. 뭔가 마음이 찡하다. 오늘 점심식당을 찾는 발자취는 힘든 시절 추억이 담긴 음식을 잠재의식이 저절로 찾아가는 회귀본능? 발자취였다.


꼬마때는 100원 짜리 새우깡 사는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엄마 백원만 줘요~ 말할때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끔 엄니는 돼지고기를 사와 튀김가루를 입히고 냉장고에 넣어놨다. 내 표정은 기쁨에 가득찼다. 엄니는 틈틈히 냉장고에서 돈가스를 꺼내 튀겨서 캐찹을 뿌려 우리에게 놓아주셨다. 우리 남매는, 특히 나는 콧물 훌쩍이며 정신없이 돈가스를 입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 푸짐한 양과 돼지고기 특유의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아늑한 고기 맛에 집중했다. 돈가스는 푸짐하고 아늑한 고기 맛 과 함께 넉넉하지 못했던 꼬마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4년간의 길고 긴 충청도 시골 군생활은 외로웠다. 가끔 장을 보기 위해 시골의 중심가로 가는데 그곳에 뼈해장국집이 있었다. 그때 처음 먹어본 뼈해장국은 돈가스 못지 않는 푸짐함과 넉넉함을 제공했다. 등뼈에 붙은 푸짐한 살점과 얼큰한 국물은 외롭고 덥고 춥고 허기진  군생활을 견디는 나를 충분히 달래주었다. 그후 나는 주말 장을 보러갈때를 기다렸다. 장 보러갈때 먹는 뼈해장국은 군생활 최고의 외식이었다.

직장생활은 편하지 않았다. 업무 강도에 힘든 기억이 많다. 혼자 프리를 뛰던 작년 그때는 야근 식대도 제공되지 않았다. 야근하고 집근처 역에 도착했는데 조금은 서럽다. 근처 시장가로 갔다. 노가다판과 시장바닥에서 거칠게 일하는 아저씨들이 소주병을 앞에 놓고 시끄럽게 떠드는 어느 순대국집에 갔다. 당시 1년에 한두번 먹는 순대국은 생소했다. 눈앞에 순대국은 고기로 가득찼다. 순대국을 먹는데 뼈해장국과 돈가스를 먹을때의 푸짐함과 아늑함을 다시 가득 느꼈다. 더구나 순대국은 뼈해장국과 달리 먹기가 편하다. 정신없이 먹고 집에 돌아가는길 내가 느꼈던 외로움과 서러움이 조금 잊혀진다. 그러나 옛날의 넉넉하지 못했던 꼬마시절 군시절이 떠올르고 지금의 나는 좀 나아졌나 복잡한 생각도 들었다. 


그뒤 나는 틈틈히 순대국, 뼈해장국, 돈가스를 먹는다. 내 인생의 먹거리는 돼지고기를 바탕으로 한 이 3가지 음식이 크게 차지한다. 그날 나는 나도 모르게 이 3가지 음식만을 찾았다.

그날 점심시간 나는 병원을 가기 위해 혼자 따로 나왔다. 혼자 나왔다는 사실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외로움은 춥고 힘들고 넉넉하지 못함 등의 씁쓸한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미약하게 느끼는 외로움을 비롯한 씁쓸한 감정은 그때 내가 즐겼던 나에게 힘을 줬던 3가지 음식을 저절로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잠재의식은 나도 모르게 3가지 음식을 찾아 꽤 먼거리를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작년부터 열심히 소개팅을 보면서 생소하고 고급스럽고 비싼 스테이크 등의 색다른 고기도 종종 먹기 시작했다.  스테이크와 돈가스, 뼈해장국, 순대국은 양 극단에 서있다. 스테이크가 명동 롯데 백화점 명품 코너와 그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지켜볼때의 느낌이라면, 이 3가지 음식은 시끄럽고 거칠지만 순박하고 넉넉한 재래 시장에 장을 보러 갈때의 느낌과 같다. 

이 3가지 음식은 푸짐하다. 넉넉하다. 아늑하다. 씹는 맛이 있다. 진하다. 얼큰하다. 먹기 편하다. 무엇보다 저렴하게 맛있다. 라는 느낌을 가진다. 기름지다. 건강에 좋지만은 않다. 라는 안좋은 느낌도 있다. 그래도 내 삶의 힘든 요소를 푸짐하고 넉넉하게 무엇보다 저렴하게 감싸안았던 이 3가지 음식은 내 잠재의식 깊은 곳에 안식처로 자리 잡았음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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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골
산골 블로그 소개 저는 하얀머리 개발자와 작가를 꿈꾸는 블로거 산골 입니다.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저의 관심사는 개발자의 숨통을 트여준 아이폰 개발, 철학과 같은 깊이가 있는 객체지향 방법론입니다. 글쓰기와 수영을 좋아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관심사를 공유합니다. 제 블로그에 관심 있으시면 아래 RSS나 즐겨찾기로 편하게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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