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가 갸우뚱 거렸다. ‘칼의노래’와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처럼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김훈 작가의 글이라면 그 시대 그 상황에 그림같이 빠져들게 하는 경험을 해주는데 이 글은 일반 소설책처럼 건조하게 읽혔다.

그러나 책을 덮은 지금 이 책의 슬픈 여운이 ‘처절하게’ 와 닿았다. 나의 몸속 깊은 곳에서 열등감과 게으름과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들을 바늘로 사정없이 찌른다. 나는 감추고자 했던 어둠을 들춰주는 이 책이 창피하면서도 고마웠고 남한산성의 무력한 우리나라와 가난한 내가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친근했다.

남한산성은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채 망해가는 명나라만 바라보다가 청나라의 침략을 받고 남한산성에서 무력하게 겨울을 버틴 끝에 결국 청나라 칸에게 큰절하며 항복하는, 무력하고 치욕스러웠던 우리 역사를 사정없이 우리 앞으로 밀어낸다.

“글쓴자의 무력함” 청나라가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먹고, 아녀자를 욕 보이는것에 분노하는 것 보다 청나라가 임금에게 보낸 얕보는 문장 하나에 더 분노한다. 그리고 방법도 없으면서 청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의 성을 지키기 위한 전술을 짜내거나, 결국 청나라와 화친하더라도 미래를 바라보는 대 전략을 세우기 보다 청나라에 보낼 문서의 글자 하나의 강약을 놓고 밤새 뱀의 혀를 날름거린다. 글로서 못할 것이 없다. 아름다운 문장은 아름다운 나라를 그리고 굳세고 강인한 문장은 굳세고 강인한 나라를 그린다. 그러나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 현실은 고통스럽다. 조선 시대 사대부, 임금 등의 글쓴자의 무력함은 한일합방까지 반복되었고 지금도 현실에 안주하고 우유부단하고 말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전쟁터의 지뢰처럼 널려있다.

“남한산성으로 안내해준 늙은 사공이 청나라까지 남한산성으로 안내해줄 까봐 결국 사공을 죽인 김상헌” 늙은 사공은 김상헌을 안내해주면서 청나라가 길 안내를 원하면 해줘서라도 먹고 살아야 겠다고 한다. 살기 위해 지극히 당연한 민초의 모습이나 김상헌은 결국 울면서 늙은 사공을 죽인다. 나는 김상헌의 결단력에 크게 놀랐다. 김상헌은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하는 ‘주전파’로 말과 글로만 싸우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쟁의 고통을 줄이는 길을 모색하는 원칙을 지키는 사대부다. 김상헌이라는 적극적이고 원칙을 지키는 사대부가 당시에 존재 했다는 것이 기뻤다.

“말과 글로 자기 명예를 채우면서 남과 나라에는 오히려 해가 되는 뱀 같은 사대부 들과는 달리, 자기가 온갖 욕을 먹더라도 나라를 위해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길을 대신 걷고자 했던 최명길” 최명길은 어쩔 수 없이 청나라와 화친을 해야 한다는 ‘화친파’이다. 최명길의 실제 역사적 평가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 화친밖에 없다며 기꺼이 손가락질을 감수하는 고독한 원칙과 희생이 나는 김상헌보다 더 애틋해 보였다.

“밟혀도 억세게 일어나는 강인한 백성의 모습 서날쇠” 서날쇠는 억세고 굵은 몸을 가졌으며 손재주 좋은 대장장이다.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살지만 당시나 현재에도 꼭 필요한 강인한 민초의 모습이다. 서날쇠는 임금의 밀서를 받아 청나라의 포위를 뚫고 지방에 구원요청까지 간다. 말과 글로 천하를 호령하는 나약한 선비들이 이런 힘든 일을 감내할 수 있단 말인가. 서날쇠는 당시나 현재나 꼭 필요한, 우리나라를 억세게 움직여주는 소박한 백성이다.

칼 같은 추위 속에 발가락, 손가락 잘리는 끊어지는 실 같은 삶을 고통스럽게 버텨가는 군사들, 청나라를 위해 부려 먹히다가 조금이라도 비틀거리면 잡초 배듯이 목이 잘려가는 포로들, 청나라 군사들의 누런 이의 웃음과 허연 침과 짐승 같은 혀를 견디며 노리개가 되었던 우리의 누이들, 임금이 청나라 칸한테 절을 하며 항복하는 중에 칸이 ‘잠깐~기다려~’ 하고 오줌을 갈기는 수치스러움, 수레에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잔뜩 채우고 청나라로 개선하는 청나라의 앞잡이 정명수, 남한산성에 '동화 속 권선징악'은 없고 '전쟁터 같은 당연한 현실'만이 존재한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 옵니다…”

바늘에 아프게 찔리듯 나의 뇌리에 박힌 최명길의 절규를, 다가올 여름에도 한 겨울 남한산성을 생각하면서 쓰게 씹어봐야겠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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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일 일요일 국제도서 박람회에서 김훈 작가님의 친필 사인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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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골
산골 블로그 소개 저는 하얀머리 개발자와 작가를 꿈꾸는 블로거 산골 입니다.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저의 관심사는 개발자의 숨통을 트여준 아이폰 개발, 철학과 같은 깊이가 있는 객체지향 방법론입니다. 글쓰기와 수영을 좋아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관심사를 공유합니다. 제 블로그에 관심 있으시면 아래 RSS나 즐겨찾기로 편하게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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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ma 2007.05.02 17: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 정말 잘 썼다. 감동스럽다 동헌군...



    거기다가 적립금까지 받았다고...
    쇠주 한잔 쏴야지....

  2. BlogIcon 산골 2007.05.02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독한 리뷰 쓰기 끝에 드디어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알라딘 TTB 4월 4주 '이주의 TTB' 리뷰에 당선되어
    적립금 5만원을 받았습니다.
    꾸준히 열심히 좋은 글 많이 올릴께요..아..감동의 눈물 ㅠㅠ;;

    http://www.aladdin.co.kr/blog/aladdintown/wttb_best_weekly.aspx?pn=weekly_20070502

  3. BlogIcon 산골 2007.05.20 2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훈, 남한산성 서평이 최근에 가입한 네이버 책을 좋아하는 사람 카페에서 새싹(신입맴버) 베스트 서평에 당선되었습니다.
    서평 고수들만 모인 곳에서 당선되서 기쁘고요. 이 카페는 제가 5군대 책카페를 가입해보고 제일 괜찮다 싶어서 선택한 곳이라 정말 괜찮은 카페입니다. 책과 글쓰기에 관심 있으시면 같이 가입해서 책과 글쓰기에 관해 같이 교류해요 ^^

    http://cafe.naver.com/bookishman

  4. BlogIcon 산골 2007.05.24 07: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서평이 '다음 블로거 뉴스 베스트 6위'에 뽑혀서 블로그 몇달 운영한것보다도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글을 읽어주시고 있는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

  5. 푸른솔 2007.05.25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텔레비전에서 김훈이 "노무현 대통령이 가잘 잘 한 일은
    한미FTA협상이다."라고 말하더이다.
    오늘 발표한 협상 전문은 엄청난 맹폭을 받습니다.
    김훈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요?
    "노비어천가"를 부르는 김훈의 글은 글쎄요?

    • BlogIcon 산골 2007.05.26 0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댓글 잘 읽었습니다~

      칼의노래, 개:가난한내발바닥의기록, 남한산성, 자전거여행등의 김훈작가의 글을 보면 항상 가난한사람의 편에서 글을쓰는것 같고 문장이 감칠맛나듯 멋있어서 제가 좋아합니다. 이것은 단지 책으로부터 짐작한 김훈작가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노비어찬가나 한미FTA협상이 제일잘했다 라는 주장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한미FTA협상이 '분명히 잘못한 대상'이라고는 아직 단정짓기 어렵고, 계속 갑론을박이 맞서는 상황이며, 김훈작가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말을 했다고 해서 책까지 비난받아야 한다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명히 잘못한 대상'을 찬양한다면 그건 문제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생각해볼만한 댓글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6. 푸른솔 2007.05.26 2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이 한미FTA를 반대하고 있으며,
    발표된 협상전문으로 인해 비난을 받고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기업의 이익때문에 농민이나 노동자, 서민은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에 나와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마치 말하는 내용이 진리인 것처럼 잘라 말하는 태도는 더욱 문제입니다.
    올바른 철학이 훌륭한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예술을 예술로만 보자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일제강점기의 친일 예술가들도 인정해야 할까요?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고민해봅니다.

    • BlogIcon 산골 2007.05.27 1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또 와주셨네요 ^^

      흠.내용이 진리인 것처럼 잘라 말한다면 문제가 있죠~

      근데 제가 김훈작가의 편이라 말하는게 아니고요.
      '일제강점기의 친일 예술가'와 '노무현 대통령과 한미FTA는' 그 비교 대상의 강약 차이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푸른솔님은 똑같이 보시는것 같군요 ^^;

      그래도 나라 걱정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대부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활만 생각하는 보통 사람보다 푸른솔님이 진짜 나라걱정 하시는 분 같아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

  7. BlogIcon inuit 2007.06.10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자의 친필 싸인이 빛나는군요. ^^

  8. BlogIcon 열심히 2007.10.16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걸어주신 것 보고 왔습니다. 제 부족한 글에 비해 글솜씨가 빛나는 리뷰네요 ^^
    거기에 친필사인까지~~ 부럽습니다.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저도 트랙백 걸어 둘께요 ^^

    • BlogIcon 산골 2007.10.17 0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단지 트랙백 걸었을뿐인데 찾아오셔서 댓글도
      달아주시고 고맙습니다~
      남한산성 참으로 의미있는 책 같습니다~
      즐거운 가을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

  9. BlogIcon 쉐아르 2008.09.29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에서의 느낌이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하신듯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는 것 같아서요.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 BlogIcon 산골 2008.10.05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쭈욱..열강들에게 시달릴 운명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앞으로 잘해야 될텐대요..근데 지금도 답답합니다. ^ ^

  10. BlogIcon okto 2009.01.28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나 성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을 보면서 원래 민심이란 이런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라에서 살펴주지 않으면 나라에 충성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